한국역사여행/권선생 역사교실

[주제탐구] 흙과 함께한 한국사

PassionAgain 2014. 5. 8. 18:16
이번 주 주제탐구는 "흙과 함께한 한국사" 입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흙으로 만든 토기나 도기에 대한 탐구를 의미합니다.

사실, 이 부분은 파고 들자면 엄청난 내용과 깊이가 수반되어야 하지만 우리 친구들의 눈높이에서 관심있는 부분에 촛점을 맞추기로 했습니다.

이 주제는 국립중앙 박물관에서 큐레이터에게 설명을 들은 내용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었습니다.

큐레이터의 설명은 훌륭했으나 정해진 시간이 짧아 많은 이야기를 듣지 못한게 아쉬웠죠.

자...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흙은 우리의 생활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흙은 공기나 물과 더불어 우리가 살아가는 필수 요소이죠.

구석기 시대 사람들도 분명 흙으로 뭔가를 했을 것입니다. 그 때도 불의 사용은 알았고, 농사를 짓지는 않았지만 채집이나 어로등을 통해 얻은 음식을 저장할 필요도 있었을 거에요.

나뭇잎이나 가지등을 엮어서 바구니 같은 것을 만들어 담기도 했겠지만, 과연 토기는 안 만들었을까요?

고고학자들이 조사한 것에 의하면 구석기에도 토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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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제주도 고산리에서 출토된 토기 조각입니다. 구석기시대의 화살촉 등과 같이 출토가 되어 약 1만년전의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세계 여러나라에서도 구석기 유물과 함께 토기가 발견되는 사례들이 종종 나타나고 있습니다.

구석기 토기는 이 정도만 이야기 할께요.

신석기와 구석기를 가르는 주요한 기준을 농경의 시작과 토기의 등장으로 배우고 있는 친구들에게는 그냥 흥미있는 이야기정도로만 아는게 좋을 거에요.

중요한건, 이와 같이 역사는 탐구정신과 의문점을 가지고 파고 들면 전에 모르던 새로운 것들이 나타나는 점이죠.

또한, 역사서의 한 글귀에 나오는 내용을 무조건 맹신하지 않고 그 당시 사회, 문화 등을 비추어서 생각해보는 것도 역사를 정확히 보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부연적으로 설명하자면, 역사는 승자의 주관적인 기록이다 라는 말이 있죠.

역사를 주도해 가는 세력들이 쓴 것이 역사이므로 아무리 사실 그대로 쓴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자신들에게 더 이득이 되는 쪽으로 왜곡하고 부풀리기도 하는 것이에요.


그럼, 본격적으로 토기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아래 사진들은 선생님이 박물관에서 찍어온 게 대부분이어서 사진에 대한 저작권 침해는 없습니다 ^^


[신석기 시대]

 - 빗살무늬 토기

   : 실제로 보면 크기가 상당히 커요. 깨진 것을 이어 붙여놓은게 대부분인데 오랜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온전하게 남아있을리가 없겠죠? 게다가 토기는 잘 깨지잖아요. 이렇게 발굴해서 조각을 붙여놓은 거 보면 정말 그 정성과 인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빗살무늬 토기는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토기에요. 농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물이 풍부한 강가에 거주지를 삼아 생활하였고, 이에 다라 강가의 모래나 무른 흙에 잘 세워질 수 있도록 아래 부분이 뾰족하게 만들었어요.

농사가 시작되어 잉여 농산물(쓰고 남은 것)이 생기게 됨으로써 저장이 필요하게 되었고, 토기 벽면에 반죽을 붙여 음식도 해먹는 용도로 사용되었어요.

빗살 무늬 토기가 항상 아래쪽이 뾰족한 것만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은 기억하세요.

   (생각할 점) 빗살무늬는 왜 넣었을까요?

   신석기 시대에는 원시신앙이 생겼다고 했지요? 아마도 실용적인 측면과 신앙적인 측면이 있었을거라 생각해요.

   실용적으로는 손으로 잡아서 미끄러지지 않는 효과도 있을테고, 고유한 무늬를 넣어서 다른 집 토기와 비교해서 잃어버리지 않도록 했을것이고, 마찰력을 강화해서 모래속에 파묻었을때 잘 서있게 하는 기능도 있었을거에요.

   신앙적으로 보면 태양및이나 비내리는 모양을 상징해서 농사가 잘되게 해달라는 애니미즘의 모습이 보이고, 곡식이 잘 자라라는 의미로 쭉쭉 뻗은 무늬를 넣었을 거에요.

그리고, 멋을 한껏 부리려는 그들만의 문화도 있었겠죠?

그때도 사람 사는 세상이었으니깐요~





[청동기 시대]

 - 고조선의 토기 그릇들

  신석기 시대 토기에 비해서 형태가 온전하게 남아있는 편이죠?

말끔하게 만들어지진 않았지만 실용적으로 쓰는 용도였기 때문에 모양에는 대단한 신경을 안썼을거에요.

그래도 자세히보면 구멍도 뽕뽕 뚫어놓고 멋을 부린 흔적은 있답니다.



 - 미송리식 토기

   : 청동기를 대표하는 토기죠? 미송리식 토기의 특징은 아래 사진처럼 손잡이가 있다는 거에요.

미송리는 북한의 평안북도에 위치해 있어요. 비파형 동검과 미송리식 토기, 그리고, 고인돌의 분포를 통해 고조선의 세력 범위를 알아보는 기준이 되기도 해요.


 - 민무늬 토기

   고조선의 토기에서 구멍이 뽕뽕 뚫려있는 토기가 바로 민무늬 토기입니다.

무늬가 없는 토기는 신석기 시대에도 발견되는데 이는 "이른 민무늬 토기"라고 불려요.  (아래 사진)



[철기 시대]

* 철기시대 초기까지는 노천가마에서 토기를 구웠기 때문에 산소가 많이 유입되어 붉은 빛을 띄죠.

* 토기, 도기, 자기는 어떤 차이일까? 아래 설명과 같이 굽는 온도에 따른 차이라고 보면 쉬워요.

보통, 온도가 500~600도이면 토기(earthen ware), 1000도 이상에서 구워지는 것을 도기(pottery), 1300도 이상에서 구워지는 것을 자기(porcelain)라고 구분하죠. 이건 유럽식 기준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토기라는 이름은 사용하지 않았어요. 일제강점기때 저 기준이 들어오면서 토기라고 명명을 했죠.

* 굽는 온도만으로 도기, 자기를 구분하진 않아요. 사용하는 흙의 종류와도 관련이 있죠.

가마의 온도를 높이고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어려운 기술이며, 우리 나라는 이러한 가마를 만드는 기술이 탁월했어요.

[삼한 시대]

- 오리모양토기

한반도에서는 새 모양으로 만든 유물들이 적지않게 발견된다.

아래 오리모양 토기는 무덤에서 발견되었으며 등과 꼬리부분에 구멍이 있어서 실제로 액체를 담는 용도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무덤에 같이 부장된 것으로 보아 장례의식을 치르는데 사용하고 같이 묻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늘과 땅, 물위에 살고 알을 많이 낳는 오리 모양을 통해 농사가 잘되고 다산을 비는 의미가 담겨 있다.





아래 사진이 좀 흐릿하지만 상당히 정교하게 만들어 진 흙으로 만든 인형들이 보이죠?

이 인형들을 자세히 보면 얼굴이 똑같이 생겼답니다. 손으로 빚었다면 어떻게 다 똑같이 생길 수가 있을까요?

실제로 이 인형들은 "틀"에 찍어서 만든 거에요. 얼굴을 찍어낸 틀이 발견되었거든요.


[백제 시대]

- 기와 (수막새)

아래 사진 3개는 백제의 시기 별로 기와 수막새의 문양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어요.

첫 사진은 아주 단조로운 무늬를 가지고 있죠? 그런데, 두번째 부터는 어떤 꽃의 무늬로 보여요.

무슨 꽃일까요?

네. 바로 연꽃이에요. 첫번째 사진 이후에 백제는 불교를 받아들였거든요. 불교의 상징이 연꽃이잖아요. 그래서, 불교를 수입한 이후로 부터 다양한 연꽃무늬가 등장한답니다.




- 곧은입 항아리

이 항아리에는 우물정(井) 자가 새겨져 있는데 사진으로는 잘 안보이네요.



[신라 시대]

- 토우 붙은 항아리

아래 토기에는 여러가지 문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요. 흙으로 만든 인형이라 해서 토우라 하는데요.

자세히 보면 개구리도 있고, 뱀도 있어요.

아주 조그마한 동물 모양의 토우가 많이 출토가 되는데요. 이렇게 토기에 붙어 있던게 떨어져 있는 거에요.


 

더 자세한 사진을 볼까요?

 


- 기마 인물형 토기

 

자세히 보면 하나는 직책이 높은 사람이고, 하나는 하인 처럼 보인다.

토기에 구멍이 두개가 있어요. 입부분과 등부분에...

그래서, 실제로 주전자 처럼 뭔가를 담아서 사용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주전자처럼 사용하는 모습이에요. 조그만 우유 한팩 정도 담을 수 있는 용기에요.

 

 


[고려 시대]

- 도자기 기와



- 고려 청자



   [독자적인 상감 기술]

- 청자 투각 칠보 향로 (12세기, 국보 95호)



   : 칠보의 뜻은 7가지 복을 가져다 주는 문양을 의미하는데, 이 향로의 뚜껑부분의 문양의 그 중 하나이다.

    이 향로는 자기를 만드는 여러 가지 기술이 복합되어진 귀한 유물이다.

    음각, 양각, 상감 등등


- 고려 후기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백자가 유행하게 된다. (역사적 사실 고증 필요)


[조선 시대]

- 분청사기



- 조선 백자

   : 철화백자 - 붉은 색을 띔

     철화백자는 산화철 안료를 사용하여 흑갈색 무늬를 그린 백자 입니다. 대체로 15세기 후반부터 만들어져서 조선 말기까지 널리 사용되었어요. 청화백자의 안료가 비싸기 때문에 구하기 쉬운 철화 안료를 많이 사용하게 되었어요. 17세기 철화백자에는 자유분방하게 만든 무늬가 많습니다.



   : 청화백자 - 푸른 색을 띔

    청화백자는 코발트라는 성분의 안료를 사용하여 푸른색 무늬를 그려넣은 백자입니다. 이 코발트 안료는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을 해서 값이 매우 비싸고 구하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주로 궁중에 속한 전문가들이 만들었죠. 그래서, 청화백자는 산수, 사군자등의 무늬가 유행하였고, 19세기에는 청화백자가 대중화되어 그릇도 많이 만들고 무늬도 다양해졌어요.



- 임진왜란(도자기 전쟁)



- 달 항아리 (18세기)

 1987년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24만 달러에 낙찰되기도 한 백자 달 항아리에요. 국립 중앙 박물관에 1점이 소장되어 있죠. 이 항아리는 크기가 매우 크고 실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달 항아리는 크기가 커서 한번에 구워낼 수가 없어 반을 나누어 위아래를 따로 만들어 구워 나중에 붙였죠.

그래서 자세히 보면 가운데 붙인 자국이 남아 있어요.

두개를 따로 만들어 굽다 보니 아주 매끈한 구의 형태가 아니고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죠. 그게 이 달항아리의 매력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