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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여행/권선생 역사교실

[2014.8.10] 역사교실 열두번째 시간

여름휴가 이후에 오랜만에 수업을 했네요.

서영이는 완도에 다녀왔다고 했고, 채현이는 다음주에 일본에 간다고 하더군요.

저희는 지지난주에 빡세게(?) 여름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전주-통영-거제도-부산-경주 에 이르는 5박6일의 일정이었죠.

해변에서도 놀고, 맛있는 것도 먹은 것도 좋았지만 경주에서 역사유물을 본것도 기억에 많이 남네요.

개인적으로는 감포근처의 감은사지 3층석탑이 기억에 남습니다.

역사 이야기를 안하고 넘어갈 수가 없는 대목인데요~

신라의 통일을 시작한 사람이 바로 김춘추죠? 김춘추가 태종무열왕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통일을 완성한 사람은 태종무열왕의 아들인 문무왕이에요.

문무왕은 진덕사를 창건하고 죽으면서 유언으로 동해바다에 내 뼈를 뿌리면 용이되어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고 합니다. 이 유언을 받아 바다에 유골을 뿌리고 그곳이 현재 문무대왕릉(수중릉)으로 유적이 되었지요.

수중릉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말이 많습니다만 현재까지 정리된건 감포앞바다에 있는 바윗돌은 실제로 문무대왕을 안장한 무덤은 아니라는 것이고, 유언에 따라 바다에 뿌려졌고 후대에 의미를 두어 살짝 튀어나와있는 바위를 수중릉이라고 한거죠.

암튼 문무왕의 아들인 신문왕에 이르러 통일 신라는 많은 변화와 발전을 하게 되는데요.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진덕사를 완성하여 "은혜에 감사드린다"해서 감은사라고 이름을 짓습니다.

감은사는 이후에 소실되어 터와 탑만 남았으니 이 탑을 감은사지 3층석탑이라고 해요.

* 참고 : 감은사지, 정림사지 등에 나오는 지(址)는 터라는 뜻으로 옛 건물은 사라지고 터만 남았다는 의미입니다.


사진을 안올려 볼 수가 없네요. (제가 더 멋지게 찍은 사진이 있는데, 일단 이걸로 올려봅니다. 다음에 바꿔야겠어요)

하나, 둘, 셋, 넷?? 4층인데 왜 3층석탑이에요~?? 라고 하시는 분도 계시는데 맨 아래에 있는 돌은 기단이라고 해서 탑의 층수를 세는데 포함되지는 않습니다.

보통 우리나라 탑은 3,5,7,9,10 층의 형태를 갖는다고 하는군요. 불교의 종교적인 어떤 의미라고 하는데 까먹었습니다.

나중에 탑을 잘 살펴보시면 위에 층이 시작되는 큰 돌판 세개를 "옥개석"이라고 부르는데 끝자락이 살짝 위로 올라가 있죠. 대부분 다른 탑도 비슷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 부분만 유심히 봐도 참 아름답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이 탑은 국보 112호이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지은 유홍준 교수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찬사를 했습니다.


수업을 정리하려고 했는데 샛길로 한참 빠졌군요 ^^


자~ 어제 수업 이야기.

지난 시간에 세조(수양대군)이야기까지 들어봤는데요. 분명 우리 아이들은 많이 까먹었겠죠?

그래서, 세종대왕의 업적과 수양대군이 왕이 되기까지의 과정등을 간단히 살펴봤어요.

아이들이 많이 기억하고 있어서 기특했습니다.

세조이후에 왕을 기억하시나요?

태-정-태-세-문-단-세   까지 했으니, 어제는 예-성-연-중-인-명-선 을 살펴봤습니다.

모든 왕이 다 재밌는 이야기 거리가 많은 건 아니니 중요한 사건들 위주로 이야기를 했어요.

어제 수업의 키워드는 바로 "사화" 입니다.

아이들에게 여러번 주입을 시켰으니 아마 사화라는 단어를 잘 기억할 거라고 믿어요.

이 기간에는 사화가 주된 사건이죠.

사화란 "사림파"들이 "화"를 입었다는 의미에요.

누구에게 화를 입었을까요?

바로 훈구파 입니다.

훈구파는 세조때 공신위주의 권력 집단이고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실세를 잡고 있는 문신들입니다. 그에 반해 사림파는 단종 복위운동을 하던 사육신, 생육신들로부터 이어지는 학자들인데 이후 지방으로 낙향하여 그곳에서 개인적으로 학문을 탐구하던 사람들입니다.

그 당시도 과거 시험에 대한 쪽집게 과외나 출제경향 분석에 의한 수업이 이루어졌는데 주로 훈구파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훈구파들의 자제들이 과거시험에 합격하는 비율이 훨씬 높았고, 계속해서 훈구파들이 권력을 잡게 되는 구도가 되었습니다.

사림파는 어떻게든 중앙 정계로 진출해보고자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죠.

그래도, 훈구파들의 압박에 정나미가 떨어진 왕들이 사림파들을 등용시켜 균형을 유지하려고 했기 때문에 사림파가 중앙정계에 진출을 아예 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어요.


첫번째 사화는 바로 연산군때 일어난 무오사화에요.

성종실록을 작성하기 위해 사초를 열람하던 훈구파 출신 이극돈이 김종직이 썼던 "조의제문"이라는 것을 보고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른 세조를 비판하는 글이라는 것을 연산군에게 일러바치게 되죠.

이를 계기로 많은 사림파 학자들이 죽고, 이미 고인이 되었던 김종직은 부관참시를 당하죠. (부관참시 : 무덤을 파서 이미 죽은 시체의 목을 벰)


두번째 사화는 갑자사화 입니다.

연산군이 어렸을때 어머니가 폐위 당하고 사약을 받아 죽었으니 곧 그가 폐비 윤씨 입니다.

성종은 여자를 좋아해서 정비,계비 외에도 후궁도 많았는데, 후궁출신인 폐비 윤씨가 질투가 강하고 성격이 좋지 않아 폐위 당하게 됩니다. 꼭 폐비 윤씨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나 다른 후궁들이 팀을 이루어 몰아낸 사건이죠.

 이 후, 세자를 책봉해야 하는데 그나마 연산군이 똘똘하다는 신하들의 의견이 있었죠.

성종은 연산군을 세자로 책봉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사건은 절대 입밖에 내지 말라고 함구령을 내립니다.

갑자사화는 "임사홍"이라는 인물이 폐비윤씨가 사약을 받은 사건을 연산군에게 말함으로 시작된 사화인데요. 임사홍이나 유자광 같은 간신배는 다음에 한번 정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갑자사화에서는 꼭 사림파만 공격을 당한것이 아니라 훈구파 대신들도 타겟이 된 사건입니다.

연산군은 궁궐에 기생들을 데려와 향락을 즐겼으니 이때 뽑힌 기생들을 "흥청"이라 불렀고, 백성들은 흥청을 뽑아 노는 연산군의 모습에 나라가 망할 것 같다 해서 "흥청망청"이라는 말이 이때 생겨났죠.


세번째 사화는 중종때 일어난 기묘사화 입니다.

나뭇잎에 "주초위왕"이라는 글을 꿀로 써 벌레가 파먹게 하고 구멍이 뚫려 글씨가 보이니 이를 왕에게 가져다 주어

주+초 = 조   : 조광조가 왕이 되려는 역모를 꾸민다는 것을 하늘이 계시한 것이라 하여 중종의 마음을 뒤 흔들어 놓습니다. 조광조와 중종은 개혁을 통해 나라를 다시 새롭게 해보려 했으나 기묘사화를 통해 조광조등 사림파들이 제거가 되면서 개혁은 중단되게 되죠.

네번째 을사사화는 중종 이후 인종, 명종 때와 관련이 있습니다.

인종, 명종때는 외척이라 하여 각각 윤임, 윤원형이라는 외삼촌이 권력을 잡고 흔들었는데요. 이들을 각각 대윤, 소윤이라 불렀습니다.

명종때 이르러 소윤인 윤원형이 대윤 세력이 대립하는 과정에서 사림파들에게 불똥이 튀어 옥사당하고 죽게되는 사건입니다. 

많은 사림파들이 피해를 당했지만, 결국 서원과 향약의 힘으로 사림파는 끝까지 살아남고 훈구파는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되어 이 후 선조때는 사림파만이 남게 되어 최후 승리를 하게 되죠.

하지만, 사림파들은 싸울 상대가 없으니 자기들끼리 파를 나누어 싸우게 됩니다. 그게 바로 "붕당 정치"의 시작이죠.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고, 동인은 다시 북인과 남인으로, 또 이후에는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게 됩니다.

일제시대에는 붕당정치를 우리나라 역사의 수치로 가르쳤었는데, 실제로는 매우 건강한 정치의 모습입니다.

지금의 민주주의처럼 여당과 야당이 서로 균형을 이루면서 바른 정책을 수립하는게 옳은 것 아니겠습니까?


+

두둥...! 임진왜란!

아이들에게 영화 "명량"을 봤느냐고 물었더니 역시 모두 봤더군요.

초고속 1000만 돌파의 기염을 토하고 있다던데, CJ배급사의 도움도 크겠지만 무엇보다 영화가 좋아서겠죠?

선조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주로 피난을 갔던 배신의 아이콘입니다.

그 반면 이순신은 백성들을 다독이며 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영웅으로 기억되죠.

아이들에게 임진왜란의 영웅들은 이순신만 있는게 아니라고 가르쳤습니다.

의병운동을 하며 곳곳에서 왜적을 무찌르고 방어를 했던 의병들...

그리고, 도망간 선조를 대신해서 종횡무진 전쟁을 지원했던 "광해군"도 숨은 영웅이죠.

광해군은 이후에 인조반정을 통해 그의 업적이 많이 가리워져서 마치 연산군과 같은 폭군인양 기억이 되지만, 실제로 광해군은 정말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

광해군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해줄거에요.

다음 시간은 광-인-효-현-숙-경-영 을 살펴봐야겠죠?

다음 시간의 주된 이야기 주제는 임진왜란때 활약하고 전란을 수습했던 광해군의 업적과

왜 인조반정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병자호란에서 우리가 당한 어려움을 배우게 될 거에요.

그러면서 청나라로 끌려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이야기도 나오겠죠?

점점 조선의 끝으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시간이 허락이 되면 정조대왕까지 살펴보는게 흐름상으로는 맞습니다.

정조 이후에 는 세도 정치라는 외척의 시대가 도래하고 서양으로부터 침공을 받아 우리 나라의 주권이 힘을 잃게 되는 때가 다가 옵니다.

아마 다다음 시간은 좀... 슬프고 답답한 역사를 배우게 될 것 같아요.

갑오개혁, 동학농민 운동 등을 배우고, 러시아와 일본의 패권 싸움등을 배우고

일본의 침략과 광복에 대해 배우다보면 이 수업도 끝이 날 것 같습니다.


"한국사 능력 검정 시험"에 대해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겠는데요.

인물 중심의 역사 이야기로 수업을 하다 보니 시험과는 약간 동떨어져있다고 생각되요.

저도 아이들도 힘들겠지만, "시험"이라는 산을 하나 넘는 게 서로에게 "도전"이 되지 않을까 생각되요.

앞으로 4~5주차를 통해 역사이야기 수업이 끝이 나면.... 그 정도 지식으로는 50점은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자신있게 생각해보네요^^

권선생 역사교실 Season 1을 마치고 나면

한국사 능력검정 시험 대비 Season 2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문제집을 선정할 것이고요. 적당량의 숙제로 문제를 풀어오고, 같이 문제를 풀면서 시험을 대비하는 식으로 할 거에요.

아이들 모두 초급 자격증을 취득하는 순간 Season 2는 종료가 되겠죠.

역사 수업을 시작할때는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반신 반의 했지만, 이렇게 이어나가고 있는 걸 보니 희망적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다소 어려울 수도 있는 수업을 잘 따라와주고, 때론 지루하지만 잘 버티고 앉아 들어주어 이만큼 까지 온것이겠죠.

우리 아이들이 대학 수능 시험을 준비할때는 "한국사"가 필수과목이 되어 있을거에요.

그때 가서 "권선생 역사교실"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이 든다면 그보다 더 큰 보람 없을거에요.


* 메뉴의 조선 카테고리에 제가 왕의 업적에 대해 정리를 하고 있는데요. 정리중이기 때문에 아직 대부분 비공개 입니다. 다음에 글이 열리면 애독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