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조선을 마무리 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는 크게 고대,중세 역사와 근현대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근현대사는 그 내용이 방대해서 별도의 과목으로 나누어질 정도이죠.
이후 수업을 어떻게 할까 고민이 많이 됩니다.
고민 이야기는 나중으로 하고, 어제 배운 내용 요약~!
+
정조 이후에 나이 어린 왕들이 올라오면서 안동김씨 세도 정치가 시작이 됩니다.
세도 정치를 거치면서 나라는 많이 피폐해집니다.
유럽은 100여년전에 산업혁명이 일어나서 공장이 돌아가고 증기기관차, 증기선이 만들어지는데
우리는 세계의 빠른 움직임을 간파하지 못하고 쓰레기 정치를 하고 있었죠.
산업이 발달하면서 다른 나라의 자원과 노동력이 필요로 했기 때문에 "제국주의"가 급부상하게 되었지요.
그 선두에 선 나라가 영국이고, 나머지는 프랑스, 독일, 러시아, 미국, 일본 등 입니다.
조선은 고종이 왕위에 오르고 나이가 어린 탓에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섭정을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세도정치를 몰아내고, 호포법(농민들에게 부담되는 군포를 양반들에게 지움)을 세움으로써 백성들의 지지를 얻게 되죠. 하지만, 고종을 위한답시고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농민들을 고생시키고 경제를 망가뜨린 것으로 그의 대한 지지는 하락합니다.
또한 이때 쯤 서양 배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면서 흥선대원군은 서양문물을 배척한다는 의미로 척화비를 세우면서 쇄국정책에 들어갑니다.
1866년 병인년에 프랑스 신부를 죽인 병인박해를 이유로 프랑스 군대가 강화도에 들어와서 많은 사람을 죽이고, 그 유명한 외규장각 도서까지 훔쳐간 사건이 벌어지죠.
그리고, 1866년에 미국배를 불태워버린 사건으로 1871년에는 미국군함이 들어와서 또 한번 충돌을 하게 되는 신미양요도 벌어집니다.
1875년에는 결국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어 부산,인천,원산 세 항구를 개항하게 되는데, 이는 조선에게 매우 불리한 불평등 조약이었죠.
우리나라 해안선을 마음대로 측량한다거나, 일본인 범죄자는 일본법으로 재판을 한다는 등 우리에게 유리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때 당시는 청나라도 외세의 위협을 받고 있었던 상태여서 그 누구도 믿고 의지할 수 없는 시기였습니다.
구식군인들의 반란이 일어나자(임오군란) 고종과 명성황후는 청나라에 도움을 청하게 되고, 이를 통해 청나라가 일본세력을 압도 하는 듯 보였습니다.
청나라와도 교역에 관련된 조약을 체결하게 되고, 그 역시도 조선에게는 불리한 것들이죠.
청나라와 일본은 텐진조약을 통해 나중에 군대가 파견되면 서로에게 알려주기로 약속을 했어요.
그런데, 동학농민 운동이 일어나자 이 농민군들의 진압을 위해 다시 청나라에 SOS를 보내게 되고, 청나라는 텐진조약에 의해 일본에 개입 사실을 알려주죠. 일본은 10년동안 절치부심 하고 있다가 군대를 같이 파견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조선땅에서 청나라와 일본이 한판 붙게 되니 이 전쟁이 바로 청일전쟁이죠.
이 전쟁에서 일본군이 이기면서 조선에 대한 일본의 세력이 강해집니다.
일본에 의해 "갑오개혁"이 이루어집니다. 사람들은 양복을 입어야 했고, 머리를 짧게 잘라야 했습니다.
이것말고도 근대화를 위한 개혁이 많이 이루어졌는데, 장점도 있었지만 가장 큰 단점은 우리 스스로 한게 아니라 일본의 주도하에 한거라는 거죠.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이긴 대가로 전쟁 배상금도 받고, 요동반도와 타이완을 할양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던 러시아, 프랑스, 독일이 가만 놔두질 않았죠.
배상금만 받아가고 땅은 그대로 놔두라고 합니다. 이를 삼국간섭이라고 하죠.
러시아 세력이 큰 걸보고 민씨 세력은 러시아에 의지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런 움직임이 을미사변이라는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사건을 낳게 됩니다.
고종은 엄상궁의 도움으로 몰래 궁궐을 빠져나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을 합니다.
이를 아관파천이라고 하죠.
러시아는 고종을 보호해주는 대가로 삼림채벌권이나, 탄광채굴권등을 가져갑니다.
그걸 본, 미국이나 일본도 똑같은 요구를 해서 우리의 자원들은 마구마구 파헤쳐져 갑니다.
일본은 철도부설권을 갖게 되어 경부선과 경인선, 경의선을 잇는 철도를 건설하죠.
하지만, 이 철도는 경제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제국주의를 이룩하려는 수단이었습니다.
1904년 일본은 러시아 함대를 기습공격합니다.
러시아는 세계최강의 발틱함대를 가지고 있었죠.
대서양에 있던 발틱함대가 즉시 출동했으나, 수에즈 운하를 열어주지 않습니다.
바로 이집트를 식민지로 삼고 있던 영국이 러시아의 독주를 막기 위한 조치인거죠.
러시아는 다시 되돌아가 아프리카 대륙과 인도를 거쳐서 조선에 들어오는데 장장 9개월이 걸렸습니다.
군대는 지칠대로 지쳤겠죠.
그래서, 러일전쟁에서 일본은 승리하게 됩니다.
전쟁이 임박함을 보고 고종은 "중립"을 선언했지만, 한일의정서에 의해 일본을 도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일본은 더더욱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강하게 갖게 되었습니다.
그 이듬해인 1905년에는 을사늑약에 의해 우리나라의 외교권이 박탈당합니다.
독립운동이 여기저기서 많이 일어나고 의병활동이 전개되지만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입니다.
1909년 만주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면서 조선의 강한 저항을 보여주기도 했죠.
하지만, 1910년 한일병합이 되면서 조선은 일본의 휘하에 넘어가게 됩니다.
한일합방이나 한일병합은 일본입장에서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한 용어이고, 우리는 경술년에 나라가 치욕을 당했다 해서 "경술국치"라고도 합니다.
+
이렇게 정조대왕 이후에 1800년부터는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일제강점기 36년을 이겨냈지만 다시 또 6.25 전쟁을 통해 나라는 폐허가 되었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희망이 없던 나라가 지금 이렇게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던 것은 국민들이 열심히 배우고, 근면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민족의 저력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
이렇게 15번에 걸친 수업이 끝이 났어요.
이 다음은 어떻게 진행할 지 고민이 많아요.
근현대사를 더 자세히 하자니 아이들에게 너무 어렵고요.
한국사 능력시험을 준비하자니 결국 근현대사를 봐야 하고요.
조선까지 정리하자는 차원으로 아이들과 상황극을 만들어서 동영상을 찍어보는 프로젝트를 해보자고 했지만,
이 또한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아요.
아래와 같이 선택을 해보려 합니다.
"근현대사를 좀 틀리더라도 한국사 능력 시험에 도전해본다."
제가 적절한 한국사 시험 교재를 추천을 드려서
아이들이 제가 정해주는 데 까지 문제를 풀어와서 역사교실에 와서 서로 토론하는 모임으로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는 방대한 내용을 빨리 전달해 주기 위해서 수업 2시간을 거의 full로 했거든요.
아이들이 많이 어렵고 힘들었을텐데 눈 반짝거리며 잘 따라줘서 참 고맙네요.
차후에 문제풀이 위주로 할때는 이렇게 길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리고, 매주가 아닌 격주로도 가능합니다.
저는 숙제 확인하고, 어려운 문제들 같이 토론해서 해결하고, 모의고사도 풀어보고 제가 따로 준비할 내용(특강)이 있으면 알려주는 수업이 될 것입니다.
현재 25회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이 접수중이에요.
시험 날짜는 10.25 (토) 입니다.
한달여밖에 남지 않아 25회를 보기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마 26회는 내년 1월이 될 거에요.
내년 1월에 한국사 능력 초급(5급 또는 6급)에 도전해 보는 거 어떨까요?
아이들이 지금까지 배운 역사를 기반으로 책도 많이 읽고, 스스로 공부를 더 하면
중급을 따는 것도 무리는 없을 것이라 생각해요.
참고로, 이 블로그의 각 시대별 카테고리에는 제가 수업을 준비하면서 작성한 많은 내용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대부분이 "비공개"입니다. 왜냐면, 제가 편한대로 끄적거리듯이 작성해놓았기 때문이죠.
그걸 잘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중이에요.
의견 부탁드려요~*
'한국역사여행 > 권선생 역사교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10.5] 역사교실 열여섯번째 시간 (2) | 2014.10.07 |
---|---|
[2014.9.14] 역사교실 열네번째 시간 (0) | 2014.09.18 |
[2014.8.17] 역사교실 열세번째 시간 (0) | 2014.08.18 |
[2014.8.10] 역사교실 열두번째 시간 (0) | 2014.08.11 |
[2014.7.20] 역사교실 열한번째 시간 (2) | 2014.07.21 |